최근 5년간(‘15~’19년) 국내가 아닌 미국에서 제기된 한국기업 간 특허침해소송이 총 12건으로 피소 기업만 32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배터리 핵심기술 유출 문제를 놓고 LG와 SK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벌인 ‘전기차용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소송 결과, SK이노베이션은 자동차 배터리 제조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 LG에너지솔루션에 2조 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으며, 두 회사가 미국 로펌에 지급한 관련 변호사 비용만 5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이 지식재산권에 대한 침해 구제를 위해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된 미국 등 해외지역에서 소송을 벌이는 만큼, 우리나라도 IP 분쟁시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실효적 증거수집이 가능한 제도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게 특허청의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회장 김용철, 現 SBS 부국장)가 14일 KAIST 서울 도곡동 캠퍼스에서 개최한 “한국형 디스커버리,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콘퍼런스에서 토론 참가자들은 특허침해 소송시 증거수집장치를 강화하는 기본적인 취지는 동감하지만, 기존 법·제도와의 정합성 문제와 현장 적용 과정에서의 부작용 등에 대비한 제도적 보완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준비 과정과 핵심 성공 요인에 대해 논의한 이날 콘퍼런스는 KAIST 지식재산대학원 박성필 교수가 진행을 맡아 ▲‘한국형 디스커버리’ 법제화 방향(특허청 산업재산보호정책과 남영택 과장) ▲해외 디스커버리 제도 활용 사례(LG에너지솔루션 이한선 상무) 등에 대한 기조 발제와 함께 ▲이후동 한국지적재산권변호사협회(KIPLA) 부회장(태평양 대표 변호사) ▲허영진 대한변리사회 부회장(김&장 변리사)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조은지 인텔렉추얼데이터 팀장 ▲김용철 지식재산기자협회장(SBS 부국장) 등이 ‘한국형 디스커버리’ 성공 요인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촉매제…. 증거수집제도 강화

특허청 남영택 산업재산보호정책과장은 이날 콘퍼런스에서 “최근 국회에 상정된 전문가 사실조사, 법정 외 증인신문 등 새로운 증거수집제도는기존의 민사소송법상 장치만으로는 특허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라며 “증거수집제도를 강화하면 특허 분쟁 장기화에 따른 기업의 경영리스크가 줄어들고 기술베끼기가 만연했던 관행도 개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허청 남영택 산업재산보호정책과장

실제로 새로운 증거수집제도인 ‘전문가 사실조사’는 현장에서 직접 조사하지 않으면, 침해입증이 어려운 사안에 대해 원고가 피고측이 제출한 자료나 증거물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는데 이용되는 절차라면, ‘법정 외 증인신문’은 원고와 피고 모두 상대방이 제출한 증거나 자료 등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

남영택 과장은 “특허침해소송은 기업경영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도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라며 “새로운 증거수집제도는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가 아니라, 권리자의 권리보호를 더욱 강화해 건전한 경제활동과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적 진실’을 밝히는 강력한 수단…. 미국 ‘디스커버리’ 제도

미국 디스커버리 사례 발표에 나선 LG에너지솔루션 이한선 상무는 “미국 소송에서 경험한 증거개시제도(Discovery)의 가장 큰 장점은, 증거의 구조적 편재의 문제를 해결하여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라는 점”이라며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식재산권 소송이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그에 걸맞는 법원의 강력한 구제 수단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가 14일 KAIST 서울 도곡동 캠퍼스에서 개최한 “한국형 디스커버리,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콘퍼런스에서 LG에너지솔루션 이한선 상무가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무는 “국내기업이 미국에서 지재권 소송을 하는 것은 증거개시제도가 주요 원인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급성장하는 현지 시장에서 고객과 사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며 “서로 다른 법체계를 보유한 국가 간에 어느 쪽이 더 우월한 체계를 갖고 있는지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으며, 상대방의 일부 절차상 장점만을 도입하는 경우에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증거개시 : 재판에 앞서 재판당사자가 소송 관련문서 등을 확보하고 이를 상호 공개해 쟁점을 명확히 정리하는 제도로 미국에서는 디스커버리(Discovery,증거개시) 제도로 운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사전에 제출되지 않은 증거는 재판에서 활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며, 독일과 일본은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증거를 조사 한 후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기존 법·제도와 ‘정합성’, 산업현장 부작용 등… 제도적 보완 필요

이날 주제 발표에 이어 진행된 패널토론에서는 특허침해 소송시 증거수집장치를 강화하는 기본 취지는 동감하지만, 기존 법·제도와의 정합성 문제와 함께 소송비용 및 전문인력이 부족한 국내 중소기업들 현실을 고려한 제도적 보완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후동 한국지적재산권변호사협회(KIPLA) 부회장(태평양 대표 변호사)은 “현장애서 증거수집의 어려움 때문에 특허소송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증거수집제도를 강화하는 방향성에는 기본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영업비밀 보호 차원에서 변호사 특권 및 책임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크게 부족할 뿐 아니라, 민사소송법 등 다른 법제도와의 정합성 문제 등 상당한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이후동 한국지적재산권변호사협회(KIPLA) 부회장(태평양 대표 변호사) KAIST 지식재산대학원 박성필 교수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특허침해소송에서 원고의 권리만큼이나 피고의 방어권도 중요하다”라며 “특허권자의 보호가 오히려 전체 산업발전을 헤칠 수도 있고, 피고 기업 역시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만큼 선과 악의 이분법적 접근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안 전문는 “기업 자료 보관절차나 프로세스 에 대한 교육 및 보완은 물론, 우리기업이 강화된 증거수집제도를 수용할 만한 수준이 되는 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세밀하게 살피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실효성 있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 플랫폼 도입이 관건

허영진 대한변리사회 부회장(김&장 변리사)도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증거수집제도를 강화하는 방향이 맞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법원의 증거수집 명령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미국처럼 그 명령이 실효성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당사자와 소송 대리인의 권한 및 책임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함께 엉뚱한 수혜자가 생기지 않도록 보완해야 할 제도적 요인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허영진 대한변리사회 부회장(김&장 변리사) ▲조은지 인텔렉추얼데이터 팀장 ▲김용철 지식재산기자협회장(SBS 부국장)

조은지 인텔렉추얼데이터 팀장은 “기업 내부자료 대부분이 디지털 전자문서 형태로 활용되고 저장되기 때문에 최근 진행되는 대부분의 증거조사는 전자문서를 대상으로 진행된다”라며 인공지능(AI) 분석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한국형 e디스커버리 플랫폼 개발을 제안했다. 미국 법원에서도 소송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적인 증거개시를 위해 적극적인 기술활용을 추천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조팀장의 설명이다.

김용철 지식재산기자협회장은 “우리나라는 특허 출원 규모로는 세계 5대 국가에 속하지만, 특허 침해 사건과 관련한 원고 승소율, 처리기간, 특허 라이센싱 규모면에서는 크게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라며 “이처럼 기존의 민사소송법상 증거 수집 절차만으로는 특허권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다양한 의견수렴 및 제도적 보완 절차 등을 거쳐 우리나라도 미국의 디스커버리제도를 원용한 강력한 증거수집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해해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행사는 최근 코로나 19로 인한 전염병 확산으로 철저한 방역지침 아래 소규모로 진행됐으며, 콘퍼런스 내용은 줌(Zoom) 화상회의 채널을 통해 200여명 참가들에게 동시 생중계됐다.

주상돈    newsdj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