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수 변리사

특허는 국가가 명세서에 기재된 발명을 강제로 공개하는 것과 청구항에 기재된 발명의 배타적 보호를 보장하는 두 개의 바퀴가 함께 돌아가도록 설계된 제도이다. 먼저 발명자로 하여금 자신의 발명이 공개될 것을 전제로 명세서에 자신의 발명을 구체적으로 기재하게 해 공중이 그 명세서를 보고 참고서 삼아 후속 기술 개발을 촉진시키되 무단으로 그대로 복제해 사용하는 것이 막아 발명자에게 보상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특허출원 시 명세서 기재요건은 매우 중요하고 엄중하다. 이번 컬럼에서는 명세서 기재요건의 중요성과 실시가능 요건에 대해 상ㆍ하 2회에 걸쳐 설명한다.

프로토타입(prototype) 정도는 만들 수 있도록… ‘실시가능 요건’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발명자는 특허 출원 명세서를 보고 그 분야의 숙련된 기술자가 자신의 기술적 상식을 사용해 그 발명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진수 변리사

다만 상품화 수준까지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상세히 기재할 필요는 없고 적어도 그 발명품을 만들어 목적하는 효과나 원리를 예측할 수 있는 정도는 기재되어야 한다.

제품개발 단계로 따지면 적어도 실험실에서 구현해 볼 수 있을 정도는 기재해야 한다. 즉 명세서를 보고 기능이나 효과를 인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목업(mockup)이나 프로토타입(prototype) 정도는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양산품이나 그 전 단계인 시제품 수준일 필요는 없다.

Douglas Engelbart의 컴퓨터용 마우스 프로토타입(prototype) (출처 : Wikimedia)

이를 특허법에서는 실시가능 요건 또는 구현가능 요건(enablement requirement)이라고 한다. 따라서 숙련된 기술자가 특허 명세서를 보고 자신의 기술적 상식을 사용해 아무리 만들어 보려 해도 만들 수 없다면 명세서의 기재요건을 위반한 것으로 봐도 된다.

특허로 인정받기 위한 법정 요건 … ‘실시가능 요건’

이러한 실시가능 요건(enablement requirement)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특허로 인정받기 위한 법정 요건으로 확립되어 있다. 미국은 특허법 제112조에서 이를 규율한다.

35 U.S.C. 112 Specification.
(a) IN GENERAL.—The specification shall contain a written description of the invention, and of the manner and process of making and using it, in such full, clear, concise, and exact terms as to enable any person skilled in the art to which it pertains, or with which it is most nearly connected, to make and use the same, and shall set forth the best mode contemplated by the inventor or joint inventor of carrying out the invention.

실시 가능 요건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명세서에 통상의 기술자가 청구 발명을 만들고 사용할 수 있도록 발명을 설명해야 한다. 출원서류에 기재된 기술 정보는 관련 기술에 숙련된 기술자들에게 청구 발명을 만들고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기에 충분해야 한다. 이러한 요건의 목적은 발명이 의미 있는 방법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대중에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최근 미국 연방항소법원의 판례를 보면 청구항에 구성요소(element)를 기능적으로 한정한 경우 명세서에 그 기능적 용어로 인해 확장되는 실시예에 대해서도 실시가능요건을 만족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명세서에 가능한 모든 변형을 구구 절절히 실시 가능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청구된 범위 전체가 합리적으로 실시 가능해야 한다.

미국에서 기능적 용어를 사용한 청구범위 작성은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Amgen Inc. v. Sanofi, No. 2020-1074 (Fed. Cir. Feb. 11, 2021))

이상지혈증 치료제 : Amgen사의 Repatha (좌) / Sanofi사의 Praluent (우) (출처 : KBR (Korea Biomedical Review))

‘합리적으로 실험’ 가능해야… 실시가능 요건의 핵심

실시가능 요건 다툼에서 그 승패의 핵심은 해당 특허의 무효를 주장하는 자가 청구 발명이 “부당한 실험” 없이는 구현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by clear and convincing evidence )로 보일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이러한 증명은 종종 다음과 같은 “지팡이 인자”(Wand factors)에 의존한다. 실시가능요건을 가늠할 잣대로 사용하는 데에 참고할 만 하다.

“(1) 필요한 실험의 양, (2) 제시된 지시 또는 지침의 양, (3) 작업 예시의 유무, (4) 발명의 특성, (5) 선행 기술의 수준, (6) 통상의 기술자의 상대적 기술, (7) 해당 기술의 예측 가능성 또는 예측 불가능성, (8) 청구 범위의 범위”

명세서에 가능한 모든 변형을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청구된 범위 전체가 적어도 실험실 단계에서는 합리적으로 실험이 가능해야 한다. 그 구현을 위한 실험이 “부당할 정도로 과도한지” 아니면 통상의 기술자가 수행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일상적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단, 35 U.S.C. 112(a) 또는 AIA 이전 구법 35 U.S.C. 112의 첫 번째 단락의 실시가능 요건(enablement requirement)을 만족하기 위해 통상의 기술자가 그 효과에 대한 청구항의 기재사항과 상관없이 완벽하고 상업적으로 실행 가능한 실시품의 예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할 필요는 없다.

발명에 대한 설명 자체가 해당 기술 분야의 숙련된 기술자들이 발명을 구현해보도록 하는 데 충분하다면 발명을 만들고 사용하는 상세한 절차는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이러한 기재가 실시가능요건을 만족하지 않는 경우, 그 특허 청구항은 거절이유가 되고 무효이유가 되고, 선출원이나 선행기술의 지위도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실시가능 요건(enablement requirement)은 발명의 서면 기재 요건(written description’ requirement)과 별개로 구별된다. ‘서면 기재’ 요건은 청구항에 기재된 발명이 명세서에 의해 기술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청구항에 대한 추가 한정사항이 최초 출원서에 제안되었던 기재내용에서 기술적으로 뒷받침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반드시 실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시가능성 요건은 우리나라라고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 특허법 제42조(특허출원) ① 특허를 받으려는 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적은 특허출원서를 특허청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② 제1항에 따른 특허출원서에는 발명의 설명ㆍ청구범위를 적은 명세서와 필요한 도면 및 요약서를 첨부해야 한다.
③ 제2항에 따른 발명의 설명은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1. 그 발명이 속하는 기술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그 발명을 쉽게 실시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상세하게 적을 것
2. 그 발명의 배경이 되는 기술을 적을 것

‘실시가능요건’을 만족하지 않으면… ‘거절 및 무효’ 사유

실시가능성 요건에 대한 특허청 심사지침을 참고해보자. 특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그것을 공개한 자에 대해 심사과정을 거쳐 특허권을 부여함으로써 발명의 보호를 도모하는 한편, 제3자에 대해서는 그 발명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산업발전에 기여하고자 마련된 제도이다.

이 같은 발명의 보호 및 이용은 실질적으로 발명의 보호범위를 정확히 명시하는 권리서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발명의 기술적 내용을 공개하는 기술문헌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명세서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발명의 설명은 그 발명이 속하는 기술분야의 평균적 기술자가 출원 시 그 발명이 속하는 기술분야의 기술상식과 명세서 및 도면에 기재된 사항에 의해 그 발명을 쉽게 실시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고 상세하게 기재해야 한다.

실시가능요건에서 말하는 “쉽게 실시”란 그 발명이 속하는 기술분야의 평균적 기술자가 해당 발명을 명세서 기재에 의해 출원 시의 기술수준으로 보아 특수한 지식을 부가하지 않고도 과도한 시행착오나 반복 실험 등을 거치지 않고 그 발명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재현하는 것을 말한다.

즉 발명의 설명은 해당 기술분야의 평균적 기술자가 그 발명을 쉽게 이해하고 쉽게 반복해 재현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상세하게 기재되어야 한다.

다만 실시가능요건은 특허법 제42조 제4항 제1호에서 말하는 특허청구범위에 기재된 사항과 대응되는 사항이 발명의 상세한 설명에 기재되어 있는지 여부와 구분된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이러한 실시가능요건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대법원 2016. 5. 26. 선고 2014후2061 판결)
물건의 발명에서 통상의 기술자가 특허출원 당시의 기술수준으로 보아 과도한 실험이나 특수한 지식을 부가하지 않고서도 발명의 상세한 설명에 기재된 사항에 의해 물건 자체를 생산하고 사용할 수 있고, 구체적인 실험 등으로 증명이 되어 있지 않더라도 특허출원 당시의 기술수준으로 보아 통상의 기술자가 발명의 효과의 발생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면, 위 조항에서 정한 기재요건을 충족한다.

또한 우리나라도 미국의 실무와 마찬가지로 실시 대상이 되는 발명은 청구항에 기재된 발명으로 해석하므로 발명의 설명에만 기재되고 청구항에 기재되지 않은 발명은 이러한 실시가능요건을 만족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처음 출원 시 청구항에 기재되지 않은 기술적 구성요소에 대한 설명을 모두 생략하는 것은 좋은 특허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장애요인이 된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정규출원에서 청구항을 기재하거나 청구항을 보정할 때 최초 명세서에 기재된 다양한 내용의 기재수준이 실시가능요건을 만족하는지에 따라 청구항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사항이 한정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초 특허를 출원할 때 명세서를 풍부하게 작성해야 한다는 의미가 단지 다양한 변형 실시예를 형식적으로 기재해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만약 이러한 기재가 실시가능요건을 만족하지 않는 경우 그 특허 청구항은 거절이유가 되고 무효사유가 된다. 더욱이 발명의 설명을 상세히 적지 않으면 출원일을 인정받을 수 없다 (특허법 제42조의 2). 또한 실시가능요건의 흠결은 진보성 판단에서 선행기술 또는 선원 또는 확대된 선원의 지위에 관한 적격에도 하자를 야기할 수 있다 (대법원 2000후2248).

이진수 변리사 sonovman@gmail.com

  • -변리사(39회)
  • -現 ㈜휴롬 지식재산본부장
  • -現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 -前 서울반도체 법무임원
  • -前 삼성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