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의 일환으로 검토중인 ‘전문가 사실조사제도’는 소송 초기, 증거인멸 이전에 침해가 의심되는 장소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점에서 제도 도입의 실질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허청 정희경 사무관

특허청 상표심사정책과 정희경 사무관은 ‘지식재산과 혁신’ 제3호에 기고한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도입을 위한 특허법 개정안 검토에서 “확실한 증거확보를 통한 분쟁의 조기해결은 기업의 불확실성을 빠르게 해소함으로써 기업활동 위축을 최소화할 수 있다”라며 “최근 특허법 개정안에 포함된 전문가 사실조사제도는 민사소송법상 증거조사 수단인 법관의 현장검증과 전문가 감정을 혼합한 방식으로 증거수집의 어려움을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허법 개정안’ : 최근 국회에 발의된 ‘특허법 개정안’은 침해소송에서 침해자가 대부분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법원이 지정하는 전문가가 침해기업에서 사실조사를 할 수 있는 ‘전문가 사실조사제’ ▲특허침해 자료를 특정하기 어려워 자료제출신청이 기각되어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료목록제출제도’ ▲자료훼손 등 증거인멸을 막기위한 ‘자료보전명령(litigation hold)’ ▲침해자가 자료를 훼손하거나 전문가 사실조사를 거부·방해할 경우 ‘특허권자가 증명하고자 하는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특허침해 소송에서는 법관이 과중한 업무부담과 기술 전문성 부족 등으로 현장검증을 적극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 또 전문가 감정은 본안소송 과정에서 전문가 선정, 감정방법 등으로 양 당사자간의 오랜 공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특허침해소송 초기에 증거확보가 어려운 것으로 지적돼 왔다.

이에 따라 정희경 사무관은 “특허침해소송 경험이 있는 기업의 80% 이상이 소송 제기 전·후의 증거수집에 어려움이 있으므로 강한 증거수집 제도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라며 “침해증거 등이 소송과정에서 제대로 밝혀지지 못 하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지식재산 보호라는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분쟁 조기해결’, ‘손해액 입증’ 등을 위한… 증거 확보가 필수

특허침해소송에서 침해 및 손해액 입증에 필요한 증거는 주로 침해자가 보유하고 있어, 권리자가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특허법에 이미 민시소송법보다 강화된 자료제출명령 제도가 도입(’16) 되었으나, 법원 실무상 활발히 이용되지 않는 상황으로 제출명령 불이행에 대한 제재는 강화된 반면, 자료를 제출하도록 유도하거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은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불성실한 자료제출에 대한 검증 부족, 소제기 직전 및 직후의 자료훼손을 밝히기도 어렵고, 설령 밝혀지더라도 이에 대한 제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또한 중소 벤처 및 스타트업은 소송이 장기화 되면 경제적 부담이 상당하여 승소하더라도 기업은 경 영상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실제로 현재 민사소송 1심에서 사실인정을 위한 증거조사가 총분히 이뤄지지 않아 소송의 장기화가 초래된다는 지적이다.

정희경 사무관은 “확실한 증거확보를 통한 분쟁의 조기해결은 기업의 불확실성을 신속히 해소함으로써 기 업활동 위축을 최소화할 수 있다”라며 “최근 손해배상액 현실화를 위해 개정된 특허법의 입법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손해액 입증을 위해 필요한 증거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현장검증’과 ‘전문가 감정’을 혼합…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현재 논의되는 한국형 ‘증거수집제도’는 민사소송법상 증거조사 수단의 하나인 법관의 현장검증과 전문가 감정을 혼합한 방식이다. 원고는 소제기 전이라도 증거보전절차와 함께 전문가 사실조사를 신청할 수 있다.

법원은 ▲특허침해 기능성 ▲조사의 필요성 ▲조사 필요성보다 상대방의 부담이 상당한 지 여부 등을 고려해 조사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그리고 현장조사에 파견할 전문가는 증거와 관련한 전문성을 가진 자로 1인 이상 여러 명을 지정할 수 있다.

법원이 지정한 중립적 전문가가 주로 하는 조사는 상대 당사자(피고)의 사무실, 공장 등에 들어가 침해중거 등을 조사하는 것이다. 조사 방법은 ▲질문 ▲자료열람 및 복사(사진 촬영) ▲간단한 실험 ▲ 계측 등 다양하다. 법원이 조사결정서를 작성할 때 조사대상, 장소, 범위, 방법 등을 특정하게 된다.

전문가가 법원에 제출한 조사결과보고서는 우선 조사를 받은 피조사자(피고)만 보게 된다. 피고는 조사결과보고서 상에 외부로 유출되지 말아야 하는 영업비밀 등 민감정보를 삭제해 줄 것을 법원에 요청할 수 있고, 이 경우 법관만 참석하는 비밀심리절차를 진행해 침해소송과 관련 없는 영업비밀 둥은 삭제하도록 전문가에게 명할 수 있다.

비밀심리절차 : 특허법 제132조에 규정된 내용으로 영업비밀 등을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법관은 소송 대리인 등을 참여시키되 열람제한, 비밀유지명령을 통해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

침해 입증과 무관한 영업비밀 등이 삭제된 조사결과보고서는 양 당사자에게 공개되고, 원고는 조사결과보고서를 증거로 신청할 수 있다. 법원은 증거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중립성이나 조사결과보고서 상에 문제되는 부분과 관련해 양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 사실인정 여부, 인정범위 등을 정할 수 있다.

조사를 받는 자는 조사에 협조할 의무가 있고, 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할 경우, 법원은 자료의 기재에 의하여 증명하고자 하는 사실에 관한 원고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조사를 거부한 법인이나 개인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있다.

반대로, 경쟁기업이 영업비밀을 탐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소송을 제기하는 등 특허권자의 권리남용 을 방지하고 조사를 받는 당사자가 조사를 통해 공장 가동중단 등 피해를 입을 경우를 대비해, 법원은 조사를 신청한 당사자에게 담보제공을 명할 수 있다.

회사 내부 ‘자료관리 체계’ 재편 필요… ‘증거수집제도’ 대응

현재 특허침해소송의 원고 인용율은 20% 정도에 불과하고, 그 원인 중 하나는 특허침해소송에서 원고가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특허전문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특허분석 정보제공 ▲회피설계전략 지원 ▲분쟁대응지원 등을 병행할 필요는 있지만, 침해중거 등이 소송과정에서 제대로 밝혀져 타인의 특허를 침해한 기업이 막대한 손해배상을 하게 되는 객관적 사례들이 축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 스스로도 ▲변호사에게 소송과 관련해 조력받은 자료의 분류 ▲비침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 ▲자료의 제공·수취과정 에서의 기록 ▲경고장을 받았을 때의 처리기준 ▲자료보전명령 이후의 내부 자료보전지침 등 회사 내부의 자료관리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정희경 사무관은 “지식재산이 제대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지식재산을 침해한 기업이 침해로 인해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불이익을 받게 되고, 침해는 반드시 소송과정에서 밝혀진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라며 “특허가 있더라도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기술혁신을 통한 산업발전은 요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상돈    newsdjoo@gmail.com

특허청이 지식재산 분야의 판례, 국내ㆍ외 정책 동향 및 주요 이슈 등에 대한 연구 결과를 담은 학술지 ‘지식재산과 혁신 제3호’를 발간했다. 지식재산 관련 제도와 이슈 등을 폭넓게 다뤄 각계․각층의 전문가, 이해 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민간의 관심 및 이해를 제고하기 위해서다. ‘지식재산과 혁신’ 학술지에 게재된 주요 내용을 기획 시리즈로 요약, 정리한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