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린 ‘2020 G20 정상 회담’을 앞두고 유럽위원회 Ursula von der Leyen 위원장과 유럽이사회 Charles Michel 위원장의 기자 회견 장면.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최근 확산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자동차 제조업체 간 특허 분쟁에 직접 개입하기로 했다.

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EU위원회가 표준필수특허(SEP)와 관련해 해당 특허가 청구된 기술 표준에 필수적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의 ‘지식재산권 실행 계획’을 마련, 이달 중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표준필수특허(SEP, Standard Essential Patent) : 표준기술을 구현하기 위한 특허로서, 표준기술을 필요로 하는 상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실시허락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특허를 말한다. 표준필수특허에 대해서는 통상적으로 FRAND 조건에 따른 라이선스를 부여한다.

Nokia 소송으로 궁지에 몰린 독일 벤츠 자동차가 1순위(?)

이 같은 EU위원회의 움직임은 최근 핀란드 통신장비 업체 Nokia와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 Daimler가 주요 내비게이션 및 통신 기술 특허 로열티를 누가 지불해야 하는 지를 놓고 독일 법원에서 소송을 벌이면서 촉발됐다.

노키아 본사 전경

최근 독일 만하임 지방법원은 노키아가 메르세데스 벤츠가 속한 자동차 그룹 다임러AG를 상대로 제기한 ‘4G 이동통신 표준기술’ 특허 소송에서 노키아의 손을 들어줬다. 다임러가 노키아의 기술을 벤츠 차량에 무단으로 사용했고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원은 다임러가 벤츠 차량에 노키아의 4G 이동통신 기술을 계속 사용하려면 라이샌스를 구입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노키아는 필요하다면 별도 공탁금을 걸고 벤츠, 다임러 등이 생산하는 차량 중 해당 기술을 사용한 차량의 판매를 중단시킬 수도 있다.

이번 판결은 노키아가 독일의 여러 법원에 제기한 10개 중 하나이다. 노키아는 대부분의 다른 주요 자동차 회사들과는 달리, 다임러가 내비게이션 서비스와 반자율 주행에 필수적인 자사 특허기술에 대해 프렌드(FRAND) 원칙에 기반한 라이센서스 계약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프랜드(FRAND) 원칙에 기반한 라이센서스 계약 : 표준특허를 다른 기업이 이용하려 할 때 특허권자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조건으로 특허 라이선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를 프랜드(FRAND) 원칙이라 부른다.

이처럼 노키아, 에릭슨 등 강력한 통신·네트워크 특허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IT기업들이 자동차 산업을 공격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들 두 회사가 참여하는 라이센스 플랫폼인 아반치(Avanci)는 2017년 BMW와 첫 번째 라이센스 계약을 한 이후 2019년도에 포르쉐, 아우디 및 폭스바겐과 계약을 체결해 주목을 받았다. Avanci는 또한 볼보와도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 플랫폼 확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테슬라도 지난해부터 Avanci와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자동차, 헬스케어, 금융… 디지털 융·복합 시장으로 확산

현재는 자동차 산업이 표준필수특허(SEP)와 라이센스 보유자 사이에서 가장 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지만,조만간 이 문제는 에너지, 건강 및 스마트 제조 분야까지 확산될 것이라는 게 EU위원회의 판단이다.

실제로 노키아(Nokia)는 통신·네트워크 분야 특허를 무기로 정보통신(IT)은 물론 자동차, 헬스케어, 금융 등 디지털 융·복합 시장까지 정조준하고 있다. 더 이상 제조는 없고 특허만 남아 있는 이 회사는 소송을 통해 강력한 ‘IP 공격자’로 변신한 것이다.

또한 최근들어 자동차 업계가 IT업체의 통신 및 스마트카 관련 특허를 인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인용수가 증가한 것은 피인용 특허 권리자인 글로벌 IT업체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향후 자동차 업계와 IT업체간 특허 소송과 함께 IP 동맹 및 라이선스 체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따라서 EU위원회는 일부 특허가 권리자가 주장하는 표준에 필수적인지 여부를 조사하고, 불필요한 특허를 라이선스하는 회사로 인해 일부 로열티가 너무 높은 수준으로 계산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전문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특허기술에 대한 필수성을 점검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이를 수행할 수있는 기술적 역량을 갖춘 전문기관도 찾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미국 특허청장이자 미국 상무 차관을 지낸 데이빗 카포스(David Kappos)도 지난 2016년 대만에서 개최된 ‘표준, 표준특허 및 경쟁법에 대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최신 표준특허권자가 신규 시장진입이 차단될 정도로 과도한 특허실시료를 요구했다는 실례는 전혀 확인된 바 없다”라며 “오히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술표준은 상호운용성을 제공하며, 이 상호운용성은 새로운 발명들이 소비자 가치를 배가시키는 네트워크 효과를 달성할 수 있게 한다”고 강조했다.

주상돈    newsdj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