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펫(FinFET) 공정 개념도 (출처: 삼성반도체이야기)

반도체 제조용 ‘벌크 핀펫(FinFET)’ 기술을 둘러싼 특허침해 소송에서 KAIST가 삼성전자로부터 최종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를 계기로 국내 대학 발명에 대한 적절한 평가 및 사업화 시스템을 도입하는 움직임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KAIST와 삼성전자에 따르면 양측은 최근 핀펫 기술과 관련된 특허 소송에 대해 합의하고 소송을 취하했다. 소송의 합의 종결에 따라 양측이 특허 라이센스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합의 조건은 공개하지 않았다.

벌크 핀펫(FinFET, Fin Field Effect Transistor) : 이종호 서울대 전기공학과 교수가 2001년 원광대 재직 시절 KAIST와 함께 개발한 기술로 기존 평면 구조가 아닌 3차원 입체 구조로 설계된 더블-게이트 플래시 메모리 장치에 관한 발명이다. 삼성전자, 인텔, 애플 등 대부분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들이 이 기술을 채택해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국내(KR 0458288)는 2002년에, 미국(US 6,885,055)에서는 2004년에 각각 특허를 출원해 등록됐다. 현재는 KAIST IP에 특허권이 양도돼 있다.

2억300만 달러 배상 판결 후…. 소송 합의 종결

이번 소송은 지난 2016년 11월에 KAIST 지식재산권 관리 자회사인 카이스트 IP(KIP)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핀펫 특허기술을 침해해 수십억 달러의 부당이익을 얻었다며, 미국 텍사스동부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미국 소송 결과, 2018년 6월 텍사스 동부지법 배심원단은 삼성전자가 KAIST의 핀펫 특허권을 고의적으로 침해했다고 판단하고 4억 달러를 배상할 것을 평결했다. 또 지난 2월에 나온 1심 판결에서도 텍사스 동부지법은 삼성전자가 KAIST IP에 2억300만 달러(약 242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핀펫 기술은 우리 임직원이 개발한 자체 기술”이라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번 합의로 핀펫 기술을 둘러싼 KAIST IP와 삼성전자간 특허침해 소송은 최종 마무리됐다.

대학발명에 대한 저평가 분위기… 잠재적 리스크로 작용

국내 대학교수가 정부 지원으로 개발한 특허기술이 어떻게 국내 대기업과의 소송으로까지 번지게 된 것일까? 국내 대학이 보유한 특허기술들에 대한 저평가 분위기가 1차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핀펫 특허 발명자인 이종호 교수가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미국 등 해외 특허권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여러 대학과 기업에 경제적 지원을 요청했으나, 번번히 거절당한 것은 IP업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나마 우여곡절을 거쳐 KAIST와 일부 특허사업화 전문기업들이 ‘벌크 핀펫’ 기술의 해외 특허권 확보에 투자하면서 운좋게(?)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이 과정에서 KIP는 2012년에 인텔이 해당 특허를 사용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의제기를 통해 약 100억원 가량의 사용료를 받았다.

KIP는 삼성전자 역시 2015년 갤럭시S6 AP에 이 기술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로열티 논의를 진행했지만, 협상이 결렬되면서 미국 텍사스 동부지법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국내 유명 대학과 대기업이 미국에서 소송까지 벌이게 되자, 지금처럼 대학발명이 지닌 상업화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적절한 사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민간 부문에까지 잠재적인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추가적인 특허료 수익은(?)… IP 포트폴리오에 달렸다.

향후 핀펫 기술이 인텔이나 삼성전자가 아닌 다른 반도체 업체들을 상대로 수조원의 특허료 수입을 거둘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세계 반도체업계가 핀펫 기술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어 소송이 확대되면 특허권 수익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게 긍정적인 측면이다.

하지만 특허 전문가들 사이에는 핀펫 기술 개발 후 지식재산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예산과 지원으로 인해 강력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갖추지 못했을 경우, 특허소송에 강한 글로벌 플레이어들의 최종 방어막을 뚫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허업계 한 관계자는 “핀펫 사례에서 보듯이, 대학내 우수한 발명이 원천특허로 전환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경우가 그동안 얼마나 많았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라며, “따라서 국내 기업들도 대학 발명에 대한 적절한 평가시스템을 갖추고 경쟁력 있는 특허를 적극 발굴해 사업화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주상돈    newsdj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