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미국에서 ‘전기차 배터리 소송’을 진행중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특허 ‘부제소 합의’ 문제를 놓고 국내에서 벌인 첫 소송에서 LG화학이 승리했다.

서울중앙지법 지식재산 전담 재판부인 민사합의 63-3부는 27일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이 맺은 부제소 합의가 국내 특허에 관한 것일 뿐이어서 LG화학이 미국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은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부제소 합의(不提訴 合意): 분쟁 당사자들이 서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법률적으로, 서면 문언에 의해 당사자 쌍방이 상소를 하지 아니한다는 취지가 명백하게 표현되어 있어야 한다.

지난 2014년,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은 ‘분리막 특허와 관련해 향후 10년간 소송하지 않겠다’는 부제소 합의를 했다. 하지만 LG가 2019년 미국에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자, SK이노베이션은 합의를 어겼다며 미국 소송을 취하하고 이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국내 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이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1심 판결 직후, SK이노베이션측은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지난 2014년에 맺은 양사 간 부제소 합의는 분리막 특허에 대해 국내∙외에서 10년간 쟁송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자사 입장에서는 합의 범위를 국내에 한정하는 것은 당시 합의의 목적도 아니었다”며 “LG화학이 5년여가 지나 합의 취지를 벗어나 일부 문구를 핑계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합의 정신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특허소송도 포함되나?… ‘부제소 합의’ 내용 및 대상

지난 2011~2014년 동안 배터리 특허 관련 소송전을 벌인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은 2014년 10월에 ‘분리막 특허’ 등과 관련 모든 소송을 종결하고, 향후 10년간 서로 국내·외 소송을 하지 않겠다는 부제소 합의를 했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공개한 부제소 합의서

이후 LG화학은 지난해 9월 미국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법에 SK이노베이션 자회사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 LG화학은 당시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판매한 배터리 탑재 차량이 총 5건의 배터리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SK이노베이션 측은 LG화학이 미국에 낸 특허 침해 소송도 2014년 부제소 합의에 포함된다며, LG화학이 합의를 위반하고 소송을 제기했으므로 소 취하 절차 이행 및 그에 관한 간접강제 청구와 함께 이에 대한 11억원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LG측은 2014년 부제소 합의는 당시 문제된 국내 특허에 대한 것일 뿐 미국에 제기한 특허 침해 소송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합의 위반이 아니므로 SK이노베이션의 소 취하 등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고 맞섰다.

부제소 대상 한국특허 ‘KR310’ vs. 미국소송 특허 ‘US517’

사건의 쟁점은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 사이에 2014년 맺은 특허 관련 부제소 합의에 미국에서의 특허 관련 소송 제기도 포함되는지 여부다.

SK이노베이션이 공개한 합의서를 보면, 양사는 “장기적 성장·발전을 위해 2011년 이후 계속된 세라믹 코팅 분리막에 관한 등록 제775310호(KR310) 특허와 관련된 모든 소송·분쟁을 종결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LG화학이 지난해 9월 미국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법에 제기한 침해 소송에는 US 7,709,152 (한국대응특허 KR 10-0727248), US 7,638,241, US 7,662,517, US 7,771,877 (한국대응특허 KR 10-0772829) 등 4개 특허가 적용됐다.

LG화학 전기차용 배터리: LG화학은 오랫동안 축적해온 공정기술을 바탕으로 배터리 업계 최초로 파우치형 배터리 ‘롱셀(Long Cell)’ 기술을 개발해 자동차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특허 분석 결과, US7,662,517(US517)특허는 2004.12.22일 한국에서 최초 출원한 10-2004-0110400 (400출원)과 10-2004-0110402 (402출원)을 기초로 2005.12.22일에 PCT 국제출원이 미국에 진입했다. 그리고 KR310 특허는 위 PCT국제출원 전날 400출원 및 402출원을 기초로 국내우선권주장 출원한 것이다.

결국, KR310의 국내우선권주장 출원에 따라 기초 출원 400출원과 402출원이 취하 간주되어 US517과 직접 연결된 한국특허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즉 US517과 KR310은 가족 관계이기는 하나 직계혈족이 아니라 방계혈족인 셈이다.

이에 대해 미국 소송 전문가인 L변리사는 “부제소 합의 대상인 ‘KR310’ 특허와 미국 침해소송 대상인 ‘US517’ 특허는 서로 같은 기술적 사상을 기초하고 있으나 ‘KR310’ 특허에는 ‘US517’ 특허에 없는 구성의 한정이 있는 등 두 특허발명의 권리범위가 같다고 할 수 없다는 판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합의서에 한국특허 ‘KR310’만 명시된 점과 특허권이 남이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권리(배타권)인점을 고려하면, 제품과 관련된 모든 특허에 대한 분쟁 합의가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는 한, 남이 사용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 범위가 서로 다른 특허발명까지 행사하지 않기로 하였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라며 “결국, US517에에 상응한 한국특허는 없다”는 게 전문가적 분석이다.

실제로 1심 판결에서 재판부도 “이 사건 합의 대상이 된 특허는 미국 특허에 대한 부제소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라며 “SK이노베이션도 합의 당시 해당 사건 특허만이, 특히 부제소 의무 부과 대상이 됐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동의해 합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 판단했다.

주상돈    newsdj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