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 본사 전경

노키아(Nokia)가 통신·네트워크 분야 특허를 무기로 정보통신(IT)은 물론 자동차, 헬스케어, 금융 등 디지털 융·복합 시장까지 정조준하고 있다. 더 이상 제조는 없고 특허만 남아 있는 이 회사는 소송을 통해 강력한 ‘IP 공격자’로 변신했다.

실제 특허분석 결과에 따르면 노키아는 디지털 정보전송을 비롯해 무선통신 네트워크, 디지털 데이터 처리 등 차세대 통신 및 네트워크 분야에 강력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따라서 휴대폰 제조 부문을 수년전 매각한 노키아가 특허 소송을 통해 단기적인 수익 극대화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차세대 통신 및 네트워크 분야 포트폴리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애널리시스 메이슨(Analysys Mason)이 최근 발표한 ‘2019년 전세계 통신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시장점유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해 전세계 통신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시장이 전년대비 약 1% 성장한 669억 달러(한화 약 78조3,000억원) 규모에 이르며, 그 가운데 노키아는 약 45억 달러(한화 약 5조2,600억원)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키아의 소프트웨어 제품군은 클라우드 네이티브(cloud-native), 다중 네트워크(multi-network), 멀티 벤더(multi-vendor) 기반의 CSF(Common Software Foundation) 용도로 설계되어, 통신사업자들에게 광범위한 운영 유연성을 제공한다. 또한 노키아의 포트폴리오는 가상화, 디지털 인프라, 네트워크 오케스트레이션 및 자동화(network orchestration and automation), AI 및 머신러닝, 인지분석(cognitive analytics) 등 광범위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통신, 네트워크 등 IT분야는 물론이고 자동차 및 부품 업체들도 노키아 특허를 빈번하게 인용해 왔다는 사실이다. 특허의 기술적 활용도를 반영하는 ‘인용 횟수’가 높다는 것은 노키아 특허 영향력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의미다. IP 질적 평가 잣대인 ‘인용 수’는 분쟁 발생 가능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특허 공세가 본격화하면 IT 영역뿐 아니라 노키아 특허를 간접적으로 활용한 자동차, 헬스케어, 부품, 금융 영역까지 소송이 번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매년 50%가량 증가한 노키아 특허 피인용 건수(2004-2013년)

노키아 소송으로 궁지에 몰린 독일 벤츠 자동차 시장이 1순위(?)

최근 독일 만하임 지방법원은 노키아가 메르세데스 벤츠가 속한 자동차 그룹 다임러AG를 상대로 제기한 ‘4G 이동통신 표준기술’ 특허 소송에서 노키아의 손을 들어줬다. 다임러가 노키아의 기술을 벤츠 차량에 무단으로 사용했고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원은 다임러가 벤츠 차량에 노키아의 4G 이동통신 기술을 계속 사용하려면 라이샌스를 구입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노키아는 필요하다면 별도 공탁금을 걸고 벤츠, 다임러 등이 생산하는 차량 중 해당 기술을 사용한 차량의 판매를 중단시킬 수도 있다.

이번 판결은 노키아가 독일의 여러 법원에 제기한 10개 중 하나이다. 노키아는 대부분의 다른 주요 자동차 회사들과는 달리, 다임러가 내비게이션 서비스와 반자율 주행에 필수적인 자사 특허기술에 대해 프렌드(FRAND) 원칙에 기반한 라이센서스 계약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프랜드(FRAND) 원칙에 기반한 라이센서스 계약 : 표준특허를 다른 기업이 이용하려 할 때 특허권자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조건으로 특허 라이선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를 프랜드(FRAND) 원칙이라 부른다.

이처럼 노키아, 에릭슨 등 강력한 통신·네트워크 특허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IT기업들이 자동차 산업을 공격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들 두 회사가 참여하는 라이센스 플랫폼인 아반치(Avanci)는 2017년 BMW와 첫 번째 라이센스 계약을 한 이후 2019년도에 포르쉐, 아우디 및 폭스바겐과 계약을 체결해 주목을 받았다. Avanci는 또한 볼보와도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 플랫폼 확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테슬라도 지난해부터 Avanci와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제 3자를 활용한 우회 공격까지… 특허 ‘사나포선’ 전략

미국 특허괴물 ‘컨버전트(Conversant) IP 매니지먼트'(이하 컨버전트)도 독일과 미국에서 다임러-벤츠를 상대로 다양한 특허 소송을 제기해왔다. 그런데 컨버전트가 ‘무기’로 사용하는 특허는 노키아가 넘긴 것으로, 사실상 노키아의 외곽 부대로 간주되곤 한다.

대형 NPE인 ‘아카시아 리서치(Acacia Research)’는 지난 2012년 완성차업체와 자동차 부품업체를 상대로 특허전쟁을 벌이기 위해 ‘아메리칸 비히큘러 사이이언스(AVS)’라는 자회사까지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노키아는 2013년 아카시아에 특허를 대거 매각한 후 본격적인 특허 공격에 나섰다.

이처럼 노키아는 여러 경로를 거쳐 회사 특허를 NPE에 양도하고 이를 소송에 활용하는 ‘사나포선(Patent Privateering)’ 전략을 채택해 왔다. 특허소송을 남용한다는 사회적 비판을 피하면서 수익금은 더 많이 챙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나포선(Patent Privateering) 전략 : ‘사나포선(私拿捕船, Privateer)’은 다른 배를 나포할 권리를 가진 민간 선박을 말한다. 해적이 창궐한 근대 유럽시대에 공식 해군만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워 민간 선박에 무장을 시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특허 사나포선 전략’은 자신이 아닌 제3자를 통해 경쟁사나 상대 기업을 공격하거나, 특허 수익화를 수행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최근들어 자동차 업계가 IT업체의 통신 및 스마트카 관련 특허를 인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인용수가 증가한 것은 피인용 특허 권리자인 글로벌 IT업체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향후 자동차 업계와 IT업체간 특허 소송과 함께 IP 동맹 및 라이선스 체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주상돈    newsdj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