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경호 이학박사·변리사

“경쟁업체로부터 특허를 침해한다는 경고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자체 연구개발한 기술로 특허를 받은 제품을 생산했을 뿐인데 어떻게 침해입니까?”

기초과학연구원(IBS) 부경호 이학박사·변리사

회사의 독자기술로 특허 받은 제품을 시장에 출시 후 반응이 좋아 설비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경쟁업체로부터 경고장을 받은 사장님이 거래하는 특허사무소를 찾아가 이렇게 하소연하거나 항의(?)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특허를 받으면 특허발명에 대한 독점적 실시권이 부여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특허권의 본질적 성격은 독점권이 아니라 타인이 실시하는 것을 배제할 수 있는 ‘배타성(exclusive)’에 있다.

독점적 실시권에서… 배타적 권리

특허법 제98조는 특허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특허발명이 타인의 선행 특허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선행 특허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업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특허권의 배타성을 명확히 하고 있다.

특허권의 배타성 : 기술발전의 속도가 빨라지고 복잡화됨에 따라, 선행발명에서 진보한(inventive) 후속 발명에 대하여도 특허권을 부여할 필요가 생겼고, 후속 발명에 독점권을 부여하게 되면 선행특허권자의 독점권은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결국 특허받은 후속 발명에 대해 선행 특허권자가 그 발명의 실시를 배제시키는 ‘배타적 권리’를 제도화할 필요성이 생겼다. 즉, 산업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고 복잡화됨에 따라, 독점적 실시권에서 타인의 실시를 배제할 배타적 권리로 특허권의 본질적 성격이 바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문가들마저도 특허권의 본질적 성격을 독점성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특허법 제94조에서 “특허권자는 업으로서 특허발명을 실시할 권리를 독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특허법 이론서에서도 ‘특허권의 침해’를 특허권자에게 부여된 ‘독점적 실시권’이 침해된 것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특허권이 이렇게 독점권으로서 이해되는 또 다른 이유는 발명자의 창작활동의 소산인 특허발명은 발명자의 소유이므로 발명자만 그 특허발명의 사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근대적 특허제도가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현대적 특허법의 모태가 된 1624년 영국의 전매조례(Statude of Monopolies)는 발명자에게 14년간 독점권을 주었었다.

‘배타적 권리’로 명시해야.. 특허법 제94조 개정 필요

특허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독점적 실시가 시장에서 실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이 만족해야 한다.

첫째, 그 특허발명의 실시가 선행특허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그 특허발명을 회피할 경쟁기술이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있다하더라도 시장에서 별 볼일 없는 경우이다. 첫째의 경우를 ‘원천특허’라고 하고 두 번째의 경우는 ‘핵심특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특허발명을 독점적으로 시장에서 실시하게 하는 정당권원은 특허법 제94조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행 특허발명 또는 현행 경쟁기술과의 권리 관계에 의하여 독점성이 확보되는 개연성의 문제이다.

이처럼 특허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독점적 실시에 대한 법적 실효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규범력을 갖지 못하는 특허법 제94조는 개정될 필요가 있다.

특허법 제94조가 개정되어야할 두 번째 이유로는, 특허발명에 대한 독점적 실시가 타법에 의해 제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허발명의 실시가 선행 디자인권 또는 상표권에 저촉될 수 있는데, 이 경우 특허법 제94조에서 부여한 독점적 실시권을 제한할 수밖에 없는 특칙이 도입될 수밖에 없다. 특허법 제98조가 그것이다.

세 번째로, 특허법을 비교법적으로 살펴보더라도 특허권을 독점적 실시권으로 규정한 경우는 일본 특허법에만 찾아볼 수 있는 정도이다. 미국은 헌법 수준에서 배타적 권리(exclusive right)로 발명자를 보호하고 있으며, WTO 무역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에서도 특허권을 명시적으로 배타적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특허권 본질에 대한 인식… 기술경영의 출발점

서두에 언급한 사장님이 특허권의 본질이 ‘배타적 권리’임을 알고 있었다면, 대규모 설비투자를 단행하기 전에 변리사를 찾아와 다음을 물어보았을 것이다. 자사 특허발명의 실시가 선행 특허를 침해하는지 여부와 경쟁업체가 자사의 특허발명을 회피·실시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 제대로 된 전략으로 대답하고자 하는 것이 이른바 ‘IP-R&D 전략’이다. 이렇게 특허권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인식은 기술 분쟁의 시대에 선제적 기술경영의 출발점이다.

특허 기반 연구개발(IP-R&D): 특허를 연구개발(R&D) 결과물로만 보지 않고 R&D의 출발점으로 삼아 연구개발 효율성을 높이고 핵심특허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R&D 수행 방식을 말한다. 경쟁사의 기술개발 현황, 산업동향 등을 알 수 있는 유용한 빅데이터인 특허를 기반으로 연구개발 전략을 수립함으로써, R&D 효율성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다.

특허법 제94조의 특허권 효력에 대한 규정은 그 본질이 ‘배타적 권리’임을 명시하도록 개정되어야 한다.

부경호 이학박사·변리사 boy1492@gmail.com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책임(차세대 반도체 장비·공정 개발) ▲특허청 특허심사관 (반도체 장비·2차전지·디스플레이 분야) ▲미국립표준기술원(NIST) 연구원 ▲서울대반도체공동연구소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원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지식재산전략기획단 ▲청와대 행정관을 거쳐 현재 기초과학연구원 이노베이션팀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