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택 한국뉴욕주립대학교 교수, Firstface 공동대표

특허와 기술혁신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특허제도를 선진국의 점유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국내 여론도 반특허적 정서가 강하다. 하지만 미국 제16대 대통령인 Abraham Lincoln은 특허제도를 “발명가라는 불에 수익이라는 기름을 끼얹는 제도”로 표현했다. 특허의 핵심이 발명가로 하여금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발명을 착상하도록 유인하는 제도임을 간파한 것이다. <편집자>

High-return을 기대하는… 발명가

우리나라 특허법 제1조는 “발명을 보호·장려”하고,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기술 발전을 촉진”해,  “산업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말 그대로 해석하면 특허법의 목적은 산업발전에 이바지함이며, 이를 위한 수단과 방법이 바로 발명의 보호·장려, 이용의 도모 및 기술발전의 촉진인 셈이다.

그런데 다른 국가에 비해 유독 우리나라는 특허의  공익성(公益性)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고, 일반 대중 역시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허 속성에 대한 대표적 오해인 ‘특허의 공익성’

특허의 공익성 주장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제조업 부흥과 수출입국 정책에 의해 산업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국내기업들이 알게 모르게 선진국 경쟁기업의 특허를 침해하다보니 미주나 유  럽에서 벌어지는 특허침해 소송의 단골 피고 신세가 되었고, 국내기업들은 번번이 소송에서 패하거나 합의를 통해 거액의 royalty를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보유 특허가 변변치 않던 국내기업들은 물론 일반 대중도 우량특허를 다수 보유한 선진국 경쟁기업들에 대한 시기심이나 반감이 싹트기 시작해 특허에 대한 반감으로 변질된 것으로 생각된다.

특허의 공익성 주장에 대한 또 다른 이유는 국내 특허법 제1조의 “산업발전에 이바지”라는 구절이다. 일예로 어떤 학자들은 발명가가 발명·특허에 대한 자신의 私益을 고려하는 동시에 이를 통한 公益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발명가는 발명·특허를 이용한 수익 창출로 자신의 私益만을 채우려 하지 말고, 조국, 민족, 사회적 公益을 위해 자신의 私益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특허법의 기본 목적을 무시한 오해의 산물이다. 주택, 토지와 마찬가지로 특허도 철저히 사유재산이다.

특허제도는 high-return을 기대하는 발명가로 하여금 high-risk를 감수하면서도 노력, 시간 및 비용을 투자해 혁신을 추구하도록 유인하는 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명가의 혁신을 저렴한 가격에 찜하는 제도하에 혁신을 추구하는 발명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설명한 특허의 공익성 주장은 특허제도 자체의 목적과도 배치되는 nonsense에 불과하다.

발명가에게 제공하는 ‘당근’.. 특허제도

특허제도는 고비용과 고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혁신 달성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발명가(즉 특허권자)에게 특허 출원 후 20년이라는 존속기간 동안 타인이 발명가의 발명을 제조하거나 사용하거나 판매하지 못하도록 금지할 수 있는 금지권을 부여한다.

발명가는 자신이 확보한 특허의 금지권을 활용해 자신의 특허기술을 구현한 제품을 타인이 저가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금지할 수 있으며, 그 결과 특허권자는 자신이 R&D에 투자한 비용을 회수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우리가 새롭고 유용한 제품과 service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발명과 혁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발명과 혁신을 무료로는 얻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임승차에 의한 시장 실패 때문이다.

시장 실패(market failure):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시간과 재원을 투자해 발명을 착상했으나 경쟁자의 무임승차로 인해 자신이 착상한 발명에 대해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발명가는 더 이상 발명과 혁신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발명과 혁신을 추구하는 발명가는 시장에서 사라지고, 시장은 발명가의 혁신을 모방하기 위해 무한정 기다리는 무임승차자들로만 가득차게 된다. 결국 아무도 발명하고 혁신할 incentive가 없으므로 발명과 혁신은 일어나지  않고, 공공영역에 축적된 지식과 기술의 양 또한  더 이상 증가하지 않을 것이며, 공중은 더 이상 새롭고 유용한 제품과 service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즉 무임승차로 인해 발명과 혁신의 시장이 실패(market failure)하는 것이다.

따라서 발명과 혁신을 끊임없이 진행하는 벙법은 무임승차로 인한  발명가의 피해 방지이며, 특허제도는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헌법(U.S. Constitution)은 Article 1, Section 8,  Clause 8에서 미국 연방의회는 발명가와 창작자에게 일정 기간 동안 각각의 발명과 저작물에 대해 금지권을 부여함으로써 과학과 유용한 기술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의 회가 제정한 법이 바로 미국 연방특허법이다.

발명에 대한 금지권의 부여

특허제도는 그림(a)와 같이 공중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발명을 최초로 착상한 발명가에게는 해당 발명을 사유재산으로 인정해 그림(b)와 같은 금지권을 부여한다. 이에 따라 발명가는 자신의 금지권을 이용해 경쟁자의 무임승차를 방지하는 한편 자신의 발명을 구현한 제품이나 service를 이용해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된다.

그 결과 발명가는 발명과 혁신을 추구하게 되므로 시장 실패도 방지할 수 있으며, 공중은 발명가가 제공하는 새롭고 유용한 제품이나 service를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특허제도가 발명가에게 제공하는 ‘당근’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그림(b) 지뢰의 크기이다. 아무리 발명가가 그림(a)와 같이 공중이 인지하지 못한 세기의 발명을 이루었더라도, 특허제도가 발명가에게 부여하는 금지권의 크기는 발명가가 거둬낸 그림(a)의 안개의 크기가 아니라, 발명가가 직접 매설한 지뢰의 크기인 점이다.

따라서 발명가가 획득하는 금지권은 발명가 자신이 대리인과 함께 청구한 범위에서 특허청 심사관이 공제한 범위를 제외한 범위에 해당한다. 발명가가 유능한 변리사나 유능한 특허출원 전문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영택 한국뉴욕주립대학교 교수, Firstface 공동대표

Baby-boom 세대의 절정인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난 저자는 유명한 발명가가 되기 위하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과 한국과학원(현 KAIST의 전신)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했고, 미국 Johns Hopkins 대학교와 Duke 대학교에서 의공학을 공부했다.

박사학위 취득 후 모교인 Duke 대학교 공과대학에서 연구교수로 근무하던 저자는 특허 2건을 출원하며 ‘바가지’를 톡톡히 쓰고 말았다. 이에 저자는 자신이 직접 특허를 쓰기 위해 만 38세에 다시 Duke 대학교 Law School에 진학하여 법학을 공부했으며, 미국 변호사 자격증 취득 후에는 미국 Boston, Silicon Valley의 유수 특허 law firm에서 특허변호사로 근무했다.

2006년 10월 저자는 21년 반의 미국 생활을 접고 영구 귀국했으며, 저자의 40년 지기이자 지금은 고인이 된 홍국선 교수의 권유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재단 본부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2008년 4월 저자는 자본금 5조 원의 세계 최대 특허관리업체(특허괴물?)인 Intellectual Ventures가 서울에 설립한 “Intellectual Ventures Korea” 초대사장으로 근무했으며, 2009년 10월부터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근무하며 미국특허제도 및 특허 사업화 등을 강의했다.

2015년 9월 저자는 software 전문 스타트업인 ‘Firstface’에 공동대표로 합류했으며, 2016년부터는 인천 송도의 한국뉴욕주립대학교(SUNY Korea)에서 정교수로 근무하며 발명, 창업 및 기술 사업화 등에 대한 강의는 물론 이의 실질적 구현에도 계속 정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