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발명과 경영, 그리고 자본을 결합해 혁신적인 경제 생태계를 구현하는 가장 핵심적인 연결고리가 바로 특허제도입니다. 마치 우리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관절과 같은 역할인 셈입니다.”

정성창 지식재산과 혁신생태계 연구소장은 특허제도가 혁신 생태계를 구현하는 데 있어 경제 주체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창의적인 정신을 이끌어 내는 강력한 ‘인센티브’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인간의 창조성을 자극하는 특도제도를 중심으로 발명가와 경영자, 그리고 투자자가 서로 연결되면서 기술혁신과 경제성장을 이끌어 낸다는 설명이다.

정성창 소장

하지만 ‘특허제도와 기술혁신, 그리고 경제성장’이라는 주제는 그동안 일반인은 물론 기업 CEO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영역으로 다뤄져 왔다. 기업 경영자와 특허 전문가들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소통의 벽이 존재했던 것이다. 정 소장이 ‘지식재산과 혁신생태계’라는 다소 무거운(?) 이름의 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더 이상 특허가 아닌, ‘돈(Money)’ 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바꿔야 한다는 게 정 소장의 생각이다. 대전에 위치한 지식재산과 혁신생태계 연구소에서 그를 직접 만나 ‘지식재산과 혁신 생태계’라는 어려운 주제로 어떻게 세상과 소통해 나갈 지를 물어봤다.

Q. 발명과 특허제도가 어떻게 새로운 산업과 문화를 만들어 왔나?

와트는 증기기관을 광산에서 침수된 갱도의 물을 퍼내기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증기기관은 이후 방직기와 결합하고 증기선, 증기기관차로 이어져 비로소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경제성장의 속도를 올렸다. 특허제도로 잉태된 발명이라는 혁신의 씨앗이 다른 씨앗과 결합해 새로운 산업과 문화를 창조한 것이다.

와트 증기기관 관련 특허 명세서: 산업혁명과 증기기관은 기술 혁신이 세상을 크게 바꾼 대표적인 사례다. ‘제임스 와트(James Watt)’는 기존 증기기관의 단점을 대폭 개선한 새로운 ‘와트식 증기기관’을 개발해 1769년에 특허를 취득했다.

에디슨의 전구는 인간이 어둠을 지배하게 해 주었고 축음기와 영사기는 오늘날 영화, 음악 그리고 콘텐츠 산업을 열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에디슨의 이러한 무수한 발명보다 그가 뉴저지에 설립한 ‘먼로 파크(Menlo Park)’라는 연구소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에디슨은 수십 명의 직업발명가를 채용해 조직과 분업에 의한 발명을 했다. 이전에 어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다. 먼로 파크는 오늘날 거대 미국 기업 연구소와 실리콘밸리 문화의 시발점이 됐다. 에디슨이 미국인들에게 각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Q. 기업 CEO 등 일반인들도 특허제도와 혁신 생태계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는 글로벌 기업 경쟁력, 지역 혁신과 도시전략, 산학협력, 창조적인 인재양성 등으로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특허제도와 강한 연결고리를 가진 것이 많다. 역사는 이들 연결고리가 한 개씩 한 개씩, 이어져 나갈 때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허제도 발전 과정을 탐구하다 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고민하는 것들을 이들 앞선 나라가 이미 경험했음에 놀라움을 느낀다. 과거를 더듬어 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나간 역사를 탐구하는 것은 재미난 이야기를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특허제도와 기술혁신, 그리고 경제성장의 긴 역사에서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찾고자 한다면 지식재산 업계는 더욱 발전할 것이다.

새로운 재산권의 등장: Douglas North(1993, 노벨상)은 저서 ‘Structure and Change in Economic History(1981)’에서 “산업혁명은 재산권 제도의 확립과정”으로 정의했다.

Q. 초창기 특허제도는 어떤 모습이었나?

특허제도는 기술혁신과 경제성장을 위한 제도로 다른 어떤 제도보다 오랜 역사를 가졌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 역사는 1473년 이탈리아의 베니스 공화국에까지 이른다. 우리가 오늘날 당연시하는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제도는 1950년대에 들어서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초기 특허제도는 매우 느릿느릿하게 진보했고, 가끔은 중단되기도 했다. 20세기에 이르면서 진보의 속도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기원후 1600년이 지나 영국 특허제도가 나타났고 이후 200년이 흘러 미국에서 두 번째로 특허제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17세기 영국 특허제도는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특허제도가 아니었다. 특허청과 심사관도 없었고, 발명가를 도와주는 변리사도 없었다. 참고할만한 판례도 변변치 않았다. 게다가 특허문서를 공개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는 특허제도가 기술혁신과 경제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이들 학자의 수십 년에 걸친 연구 덕분에 특허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기업은 특허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비밀이 풀리고 있다.

Q. 특허 제도의 진보와 발전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특허제도 발전은 교육, 금융 등 다른 영역과 상호작용의 역사이기도 하다. 19세기의 발명가들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와트도 그랬고 에디슨도 그랬다.

지금은 대학에서 체계적인 공학과 과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전문적으로 발명을 한다. 반도체, 유전자 가위, 페이지 링크와 같은 것들은 모두 대학을 나온 사람에 의해 발명됐다. 대학과 특허제도 간 상호작용이 발명가의 능력과 자질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온 것이다.

자본과 특허제도의 결합 또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포인트다. 와트는 당대의 부유한 사업가였든 볼턴의 재정적 지원으로 증기기관의 상업화에 성공했다. 에디슨도 조그만 발명과 특허를 매각하면서 자본을 축적하고, 그 자본을 전기와 전구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영국 50파운드 지폐에는 증기기관 발명가 제임스 와트와 사업가인 메슈 볼턴 두사람의 얼굴이 나란히 실렸다.

당시에는 와트와 에디슨만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산업혁명 시대 발명가들 대부분이 비슷한 상항이었다. 지금은 엔젤, 벤처 캐피털, 주식시장 그리고 은행이 혁신에 자금을 대고 있다. 게다가 발명을 하라고 정부와 기업이 GDP의 상당한 비중을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발명활동의 구조적 변화
Sullivan : 발명의 시대 진입  – 1757년, 구조적 변환의 전환기
Gary Cox : 명세서 제도의 변화 – 1734년, 명세서 요건이 확립

Q. ‘지식재산과 혁신 생태계’라는 어려운 주제로 세상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스스로 알게 된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아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서로 다른 영역의 사람들이 만나면 소통에 장애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러한 무지, 오해 그리고 소통의 장애가 일어나는 대표적인 분야가 특허와 지식재산 영역이다.

문제는 기업 경영자와 특허 전문가들 사이에 공통 언어가 없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언어로 얘기를 하다보니 소통이 불가능했다. 기업 CEO들은 수천개 특허를 보유한 발명가 보다는, 돈(Money)을 잘 버는 사업가로서의 에디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결국, 특허가 아나라 ‘돈’ 얘기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바꿔야 한다.

아, 깜박 빠트릴 뻔했다. 미국 유명 과학저널 중 하나인 사이언틱 아메리카가 1845년에 창간됐다. 이 저널이 처음 한 일이 지금 IP 데일리가 하는 ‘특허소개’ 뉴스였다. 그 만큼 혁신 생태계를 구현하는 데 지식재산 전문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주상돈    newsdjoo@gmail.com

정성창 지식재산과 혁신생태계 연구소장은?

정성창 소장은 대전에서 지식재산과 혁신생태계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혁신생태계 전문 칼럼을 쓰고 있다. 연구소는 기업 혁신전략, 지역 생태계, 산업혁명과 기술혁신, 제도와 기업가, 특허제도의 경제사 등에 관한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신산업과 지식정보혁명’(2001, 공저), 지식재산 전쟁(삼성경제연구소, 2005, 단독), 기업 간 추격의 경제학(2008, 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