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택 한국뉴욕주립대학교 교수, Firstface 공동대표

발명이란 무엇일까? 우리나라와 미국은 물론 대부분 국가의 판례를 보면 발명은 착상과 구체화라는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발명의 착상과 구체화에 근거한 발명가 여부는 물론 공동발명가 기준도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편집자>

Vanderbilt University vs. ICOS Corp. (Fed. Cir. 2010)

Vanderbilt University vs. ICOS Corp.은 복잡한 R&D 과정을 통한 공동발명가 요건에 대한 2010년 미국 연방항소법원 판례이다. Vanderbilt case는 산학협력의 전형적 예로서 비영리단체인 대학교와 영리단체인 기업이 유사한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 갈등의 전형적 예라 할 수 있다.


Vanderbilt University와 Glaxo의 Logo

Cyclic GMP(cGMP)는 cGMP에 의존하는 protein kinase와 결합한 후 이를 활성화시켜 평활근(smooth muscle cell)을 이완·팽창시킴으로써 남성의 발기를 유도한다. 1980년대 말 평활근 속의 phosphodiesterase 5 enzyme(PDE5 enzyme)은  cGMP와 결합해 이를 가수분해하는 것으로 밝혀졌  다. 이에 따라 1980년대 말 PDE5와 결합해 cGMP의  가수분해를 막는 PDE5 억제제가 남성 발기부전증  치료제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Vanderbilt University(‘Vandy’로 약칭)의 연구자인 Dr. Corbin과 Dr. Francis는 1970년대에 PDE5의 기전을 확인하였다. 이들은 PDE5에 대한 연구를 계속 수행했으며, 1980년대 말에는 cGMP 유사체(analog)를 이용한 PDE5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1988년 12월경 Dr. Corbin은 cGMP에 의존하는 protein kinase를 활성화시킬 수도 있는 cGMP 유사체의 목록을 제시한 “cGMP 유사체에 대한 연구제안서”를 Glaxo에 제출했다.

다른 발명가 연구와 특허 등록 및 양도

1989년 6월 Glaxo는 Dr.Corbin과 cGMP 유사체에 대한 연구계약을 체결했으며, 연구계약의 특허 귀속 조항에 의하면 상기 연구를 통하여 창출되는 결과물에 대한 특허는 Vandy가 소유하지만, Glaxo는 Vandy로부터 이에 대한 license를 허여 받을 수 있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Vandy 연구진은 연구를 수행하며 여러 차례에 걸쳐 Glaxo에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직접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1990년 11월 Vandy 연구진은 cGMP 유사체의 효능을 증진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중이었다. Vandy 연구진은 cGMP 유사체의 8-position에 phenyl ring을 부가할 경우 효능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 초록을 Glaxo UK에 발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1년 5월 Glaxo는 cGMP 유사체에 대한 Vandy의 연구에 대한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Glaxo는 cGMP 유사체가 경구복용 약물보다 효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에 우려를 나타냈으며, Glaxo는 향후 PDE5 억제제를 연구하도록 Vandy 연구진에게 조언했다.


Glaxo의 U.S. Pat. No. 5,859,006(‘006 특허)의 청구항 1

이후 Glaxo는 후속연구를 Dr. Daugan에게 일임했으며, Dr. Daugan은 1992년 6월부터 1994년 1월까지 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결과 남성 발기부전증을 치료할 수 있는 tadalafil을 개발했다. Glaxo는 이에 대한 특허를 출원해 U.S. Pat. No. 5,859,006(‘006 특허)14) 및 6,140,329(’329 특허) 15) 를 등록했고, 1991년 Glaxo는 상기 특허들을 ICOS에 양도했다.

미국 연방지방법원에 발명가 정정 소송 제기

Vandy는 1992년 4월 Glaxo France가 실험한 총 29개의 PDE5 억제제 전부가 자신의 연구진이 제안한 “Structural Feature”(당시 가장 효능이 높았던 PDE5 억제제 zaprinast 및 IBMX 유사체에 대한 table)를 활용했으며, 특히 이 중 11개의 화합물이 “Structural Features”에 거의 모두 포함되기 때문에 Vandy가 Glaxo 특허의 공동소유권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Glaxo와 ICOS는 이에 불응하였고, Vandy는 2005년 미국 연방지방법원에 35 U.S.C. § 256에 따
라 ICOS를 상대로 ‘006 특허와 ‘329 특허의 발명가 정정 소송을 제기했다.

Vandy는 자신이 Glaxo에 제공한 “Structural Features” 없이는 GR30040x를 주화합물로 선정할 수 없었을 것이며, GR30040x의 후속연구를 수행한 Dr. Daugan 역시 tadalafil을 개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Vandy는 자신의 연구진이 Glaxo의 ‘006 특허와 ‘329 특허의 공동발명가로 기재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연방지방법원은 여러 가지 사건의 시점을 감안했을 때 Glaxo가 Vandy의 IBMX 유사체를 인지 한 후, 이를 이용하여 beta-carboline을 연구했다는 Vandy의 주장이 설득력은 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연방지방법원은 Glaxo가 Vandy의 IBMX의 세부 구조를 이용해 tadalafil을 개발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이 Vandy 주장의 약점인 반면 Glaxo의 주장 역시 IBMX의 세부 구조를 이용하지 않고서도 tadalafil을 개발할 수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이 약점이라고 판시했다.

연방지방법원은 GR30040x에 대한 양 당 사자의 주장의 신빙성이 거의 동일하다고 판시하며, 이에 따라 ICOS의 주장을 인용하는 한편 Vandy의 발명가 정정 요청은 기각했다.


미국의 공동발명가 요건에 대한 35 U.S.C. § 116 (1988)

발명가 분쟁과 선출원의 중요성

Vandy의 항소를 담당한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Vandy가 Glaxo France의 Dr. L이 Vandy 연구진의 연구결과를 유용하였음을 명백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도로 입증하지 못했고, Vandy 연구진인 Dr. Corbin, Dr. Francis는 물론 Dr. Konjeti 역시 Glaxo France의 Dr. Daugan과 GR30040x 등의 PDE 5 억제제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교신한 적이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Dr. L이 Dr. Daugan에게 Vandy의 “Structural Features”를 전달하였다는 증거가 없고, Dr. Daugan이 GR30040x을 합성하기 위하여 Vandy 연구진의 연구결과를 사용했음을 명백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도로 입증하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연방항소법원 역시 연방지방법원의 발명가 정정 요청 기각을 인용했다

요약하면 Vandy는 Glaxo가 개발한 PDE5 억제제가 자신의 “Structural Features”를 활용하였음을 50:50정도에 해당하는 증명의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까지는 입증하는 데 성공했지만, 등록특허의 발명가가 정확하다는 추정을 극복하기 위해 만족해야 할 70:30 정도에 해당하는 명확하고 신뢰할 만한(clear and convincing) 증거로 입증하는 데 실패함에 따라 발명가 보정에 실패한 것이다.

Vanderbilt case는 알면서도 빼앗길 수 있는 산학협력의 속성은 물론 선출원의 중요성을 반영한다.

심영택 한국뉴욕주립대학교 교수, Firstface 공동대표

Baby-boom 세대의 절정인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난 저자는 유명한 발명가가 되기 위하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과 한국과학원(현 KAIST의 전신)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했고, 미국 Johns Hopkins 대학교와 Duke 대학교에서 의공학을 공부했다.

박사학위 취득 후 모교인 Duke 대학교 공과대학에서 연구교수로 근무하던 저자는 특허 2건을 출원하며 ‘바가지’를 톡톡히 쓰고 말았다. 이에 저자는 자신이 직접 특허를 쓰기 위해 만 38세에 다시 Duke 대학교 Law School에 진학하여 법학을 공부했으며, 미국 변호사 자격증 취득 후에는 미국 Boston, Silicon Valley의 유수 특허 law firm에서 특허변호사로 근무했다.

2006년 10월 저자는 21년 반의 미국 생활을 접고 영구 귀국했으며, 저자의 40년 지기이자 지금은 고인이 된 홍국선 교수의 권유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재단 본부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2008년 4월 저자는 자본금 5조 원의 세계 최대 특허관리업체(특허괴물?)인 Intellectual Ventures가 서울에 설립한 “Intellectual Ventures Korea” 초대사장으로 근무했으며, 2009년 10월부터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근무하며 미국특허제도 및 특허 사업화 등을 강의했다.

2015년 9월 저자는 software 전문 스타트업인 ‘Firstface’에 공동대표로 합류했으며, 2016년부터는 인천 송도의 한국뉴욕주립대학교(SUNY Korea)에서 정교수로 근무하며 발명, 창업 및 기술 사업화 등에 대한 강의는 물론 이의 실질적 구현에도 계속 정진할 계획이다.